윤철수
尹哲洙1868. 5. 29 ~ 1942. 7.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6)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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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6) 1868년 5월 29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남하면(南下面) 양항리(梁項里)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순명(舜明)이며, 호는 해관(海觀)이다. 영남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거창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유림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유림들이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독립청원서」의 서명자로 참여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천명함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민족대표 33인의 명의로 발표된 「독립선언서」이다.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된 민족대표에 유교계 인사가 포함되지 않은 것에 유림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와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인은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독립불원서(獨立不願書)」를 이완용(李完用) 등 친일파를 통해 조선인 스스로 작성하게 하고, 김윤식(金允植)을 유림의 대표자이자 청원의 대표자로 서명하게 하였다. 이에 전국의 유림은 국제질서를 논의하는 파리강화회의에 나라의 독립을 희망하는 의사를 직접 전달하기로 결의하고, 뜻을 모아 국제사회에 알릴 문안을 작성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일제가 자행한 한국 주권의 불법적인 찬탈과정 폭로와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내용 등을 총 2,674자의 한자(漢字)로 기술한 장문의 독립청원서가 완성되었다. 세칭 파리장서로 불리는 이 독립청원운동은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호서 유림과 곽종석(郭鍾錫)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림이 주도하였다. 곽종석은 영남지역에서 스승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학맥을 중심으로 문하의 제자들을 곳곳으로 보내 참여를 독려하며 독립청원운동을 주도하였다. 평소 스승 곽종석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의 영향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울분과 한국의 독립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스승 곽종석으로부터 유림의 독립청원운동에 대한 내용을 전달받고,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던 윤인하(尹寅夏)·이승래(李承來) 등과 함께 파리장서 137명 중 한사람으로 서명하였다. 유림은 파리강화회의에 김창숙(金昌淑)을 대표로 파견하여 직접 독립청원서를 제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중국 상하이(上海)에 도착한 김창숙(金昌淑)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직접 파리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당시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대표로 이미 파리에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독립청원서를 보냈었고, 국내의 각 향교에도 사본을 전달하였다. 이러한 유림들의 독립청원운동은 서명자인 송회근(宋晦根)이 1919년 4월 2일 성주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 발각되었다. 이후 유림 대표들에 대한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활동 과정에서 스승 곽종석 및 윤주하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곽종석·김복한 등을 제외한 다른 일반 서명자들과 함께 미결수로 3개월 간 옥고를 겪다가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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