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선
尹喆善1865. 9. 20 ~ 1927. 2.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청양군 화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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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65년 9월 20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화성면(化城面) 산정리(山亭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5일 화성면 산정리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화성면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5일 산정리에서 시작하여 농암리(農岩里)·화암리(花岩里)·수정리(水汀里) 등에서 7일까지 3일 동안 이어졌다. 화성면의 만세운동을 처음 일으키고 주도한 인물은 박공삼(朴公三)과 조남희(趙南熙)였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하고, 자신들의 마을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여 주변의 인물들을 규합하였다. 박공삼과 조남희로부터 “조선은 이미 독립되었으니, 독립만세를 부르자”는 호소를 듣고, 이에 공감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박공삼 등은 면소재지인 산정리(山亭里)를 중심으로 1919년 4월 5일부터 6일까지 2일동안 지속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4월 5일 박공삼과 조남희의 지휘에 따라 조경희(趙景熙)·김정봉(金正鳳)·김종문(金鍾文)·박태선(朴泰善) 등 산정리의 주민 20여 명과 함께 정자동(亭子洞)에 태극기(太極旗) 2기를 세워놓고 큰 종과 쇠북을 울리며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날인 6일에도 박공삼 등의 지휘에 따라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한 산정리 주민들과 함께 오전 10시 경 화성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당시 면사무소는 증축 공사를 하고 있었다. 박공삼은 공사 현장으로 가서 인부들에게 “조선은 이미 독립하였기 때문에 증축 공사는 필요치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공사를 중단시켰다. 인부들이 공사 현장을 떠나자, 박공삼의 지휘에 따라 ‘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돌을 던지는 등 공사중인 면사무소의 시설을 파괴하는데 참여하여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일제 헌병에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靑陽憲兵分遣所)로 연행되었고,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6일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처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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