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천각
尹天覺186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1919년 순천군 풍산면
- · 자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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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풍산면(豊山面) 제일리(第一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19년 당시 나이가 58세로, 1862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사립 박인학교(博仁學校) 교장으로 재직하였다. 3월 3일과 6일 순천군 풍산면과 자산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3일 오후 4시경 풍산면 제일리 조석화(趙錫化)의 집 앞에서 교사 이관배(李官培)와 이덕길(李德吉)·노병심(盧炳心) 등의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주민들로부터 프랑스 파리의 강화회의에서 조선 독립을 승인하였으므로 조선은 곧 독립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함께 만세를 불렀다. 또한 3월 6일에는 제일리와 백전리(栢田里) 주민들과 함께 자산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2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천운이 순환하여 전 세계가 함께 태평을 누리고 조선 인민도 독립심을 치열하게 일으키고 있으며 파리강화회의에서 조선 독립에 대한 운동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선인민들은 모두 기뻐하고 있고, 지금의 상황은 인력이 아니라 천운이라고 하면서 일본이 무리하게 총으로 인민을 살해하고 붙잡아 징역에 처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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