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추
金光秋1899 ~ 1924. 6.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관련 사건
- · 보민회장 최정규 기습공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6) 1899년 평안북도에서 출생하였다. 가족관계와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렵다. 아울러 재만(在滿)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서 소대장으로 활동하였으나 도만(渡滿)한 경위나 그 이전의 활동상도 현재까지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1924년 6월의 일제 보고문서에 의하면 중국어에 능통하다고 기록되어 있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만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통의부는 경신참변(庚申慘變, 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으로 파괴된 남만주(南滿洲) 한인 사회를 재건하고, 독립군의 항일 무장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17개 단체가 1922년 8월 통합해 성립된 독립운동단체다. 여러 단체가 통합한 관계로 가담한 단체들이 기존에 구축한 근거지 및 그 단체들을 뒷받침하던 한인 사회도 통의부 소속이 되었다. 또한 경신참변으로 많은 독립군이 수난을 겪었지만 소속 독립군 수도 많았다. 이처럼 규모가 커진 한인 사회를 재건하고 독립운동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통의부는 자치와 의용군 조직 등 두 개로 구분된 기구를 설치해 단체를 운영하였다. 즉 민사·법무·교섭·군사·재무·학무·권업·교통 등 자치부서와 5개 중대 및 유격대·독립소대가 편성된 의용군 조직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통의부 의용군의 제5중대 2소대장에 임명되었다. 5중대장은 14세의 어린 나이에 해산 군인 노희태(盧熙泰)가 일으킨 의병부대에 가담해 활동하고, 경술국치 후에는 서간도로 넘어와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암살대장을 역임한 김명봉(金鳴鳳)이었다. 5중대는 싱징현(興京縣)에 병영을 구축하고 푸순(無順)·번시(本溪)·카이위안(開原)·톄링(鐵嶺)·펑톈(奉天, 현 선양(深陽))·둥펑(東豊)·시펑(西豊)·지린(吉林)·창춘(長春) 등을 활동 무대로 하였다. 그 중에서도 남만철도연선(南滿鐵道沿線)인 창춘·지린·톄링·펑톈·푸순·안둥(安東, 현 단둥(丹東))을 주 활동지로 하여 일제 침략 기관을 파괴하고 침략자 및 친일의 무리를 응징하였다. 1924년 중반 통의부 5중대는, 제1중대장 채찬(蔡燦, 이명 백광운(白狂雲))과 김원상(金元常) 등이 주도해 1·2·3 중대와 유격대 및 독립소대를 이탈시켜 설립한 임시정부 산하의 독립군단인 참의부(參議部)에 합병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가 활동하다가 순국할 때까지는 참의부가 아닌 통의부에 소속되어 있던 시기였다. 5중대에는 3개 소대가 편제되어 있었는데, 중대장 김명봉이 가장 신임하는 소대장이었다. 중국어에 능통한 데다 책임감이 강해 한때는 경리(經理)의 직책을 맡아 무기 구입 업무를 책임지고 수행하기도 하였다. 1924년 5월 말 김병현(金炳賢)·박상만(朴相萬) 등 두 명의 대원을 대동하고 친일파 척결을 위해 출동하였다. 먼저 푸순으로 이동해 6월 1일 그곳에 거주하며 독립군의 활동을 수없이 방해한 밀정 정갑주(鄭甲周)의 집을 기습해 응징 처단하였음을 밝히는 선언과 다른 친일파들에게 경고하는 선고문을 부착하였다. 선고문에는 “의용군 제5중대장의 명령을 받고 정갑주를 사형에 처했음을 선언한다. 다른 주구들도 기필코 사형에 처할 것이니 심사숙고하라. 너희는 대한 민족이거늘 어째서 왜의 밀정 노릇을 하는가?”라는 문구가 기록되었다. 이어 만주에서 최고의 친일파 거두로 행세하며 독립군의 활동을 방해하는 최정규(崔晶圭)를 처단하고자 펑톈으로 이동하였다. 최정규가 이끄는 보민회(保民會)는 가장 악질적인 친일 집단이었다.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은 이 단체의 회원들은 첩보나 밀정 행위만이 아니라 무장을 갖추고 일제 침략자들보다 앞장서 독립군과 대결하였다. 싱징현에 만주보민회 총본부를 두고, 그 밑에 총 120개가 넘는 지부회(支部會)·지회(支會)·분회(分會) 등을 전 만주에 설치하였다. 이 같은 매국 조직을 총지휘하는 최정규는 조국 광복을 위해 활동하는 독립군들로서는 기필코 제거해야 할 인물이었다. 펑톈으로 이동한 3명의 별동대는 6월 7일 저녁 8시 30분경, 정정(淀町)에 있는 최정규의 집을 기습해 들어갔다. 그러나 수차에 걸쳐 독립군의 공격을 받아온 최정규는 대원들이 들이닥치자 재빨리 창문으로 탈출해 공격을 면하였다. 별동대는 최정규의 장모를 사살하고 그의 부하 2명에게 중상을 입힌 후 퇴각해 나왔다. 최정규의 집을 나온 별동대는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김우현(金右現)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 295원을 모집하였다. 이후 별동대는 일제의 수사망을 피하고자 흩어져 각자 이동하였다. 그러나 최정규의 신고를 받은 중국경찰대의 추적을 받고, 박상만과 김병현 두 대원은 체포되고 말았다. 체포 당시 박상만은 19세, 김병현은 20세였다. 두 대원은 일제의 끈질긴 요구와 압박에 의해 펑톈 일본 영사관으로 인계되었다. 두 사람과 헤어져 푸순현 마우장자(馬牛庄子)에 있는 동지 최원철(崔元喆)의 집으로 갔다. 두 부하 대원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기다리며 다음 작전을 계획하고 있을 때, 6월 15일 일제의 푸순영사관 경찰서 소속 경찰 4명이 최원철의 집을 포위하며 습격해왔다. 사력을 다해 대적하였으나, 결국 일제 경찰의 총탄을 맞고 순국하고 말았다. 순국 당시 몸에 지니고 있던 소지품은 모젤 권총 1정, 탄환 34발, 탄창 4개, 약간의 현금이 든 지갑 1개, 제5중대장 김명봉 명의의 출장명령서 1매, 군자금 영수증 1책, 밀봉서장(密封書狀) 2개, 인감 1개, 김명봉 명함 7매, 봉투와 백지 등 수십 매, 기타 문방구류 몇 점 등이었다. 백지와 문방구류를 소지하고 있던 것은, 정갑주를 처단하고 부착한 선고문의 경우처럼 작전이 끝난 후 일제와 친일파들에게 경고하는 선고 또는 격문 등을 써서 부착하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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