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옥
尹餘玉186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민노인동맹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9) 서울 저동(苧洞) 출신이다. 1919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59세로 기록되어 있어, 1861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윤여옥(尹汝玉)·윤용옥(尹容玉)이다.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승지(承旨)를 지냈다. 한일신협약 체결 이후 간도를 거쳐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 거주하였다. 1919년 3월 26일 블라디보스토크 김치보(金致寶)의 집에서 박은식·최병숙(崔秉淑)·김치보·이득만(李得萬) 등과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조직하였다. 김순약(金舜若)·김치보·박은식·최병숙·강문백(姜文伯) 등과 연서로 노인동맹단 취지서와 선언서를 발표하고, 의원에 선임되었다. 1919년 4월 1일 박은식 등과 일제에 독립을 요구하는 장서(長書)를 보내는 사안을 논의하였고, 이동휘의 아버지 이승교(李承橋)·안중근의 백부인 안태순(安泰純)·김학연(金學淵)·차대유(車大輶)·정치윤(鄭致允) 외 1명과 조선총독부에 파견할 대표단에 선정되었다. 1919년 5월 20일 일왕과 조선총독에게 전달할 장서와 노인동맹단 취지서를 지참하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중국 안둥현(安東縣)으로 이동하였다. 2명이 신병으로 돌아가고 이승교·정치윤·차대유·안태순과 신의주를 거쳐 5월 31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종로 보신각 앞에서 동지들과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붙잡혀 차대유·안태순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7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8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