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公雨
公雨1876. 11. 15 ~ 1954. 11.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1919년 부천군 계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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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876년 11월 15일 경기도 부천군(富川郡) 계양면(桂陽面) 이화리(梨花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암본공우(岩本公雨)를 썼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4일 계양면 장기리(場基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부천군에서는 1919년 3월 20일 계양면에서 만세시위가 거행된 이후, 3월 24일부터 28일까지 계남면(桂南面)·계양면·부내면(富內面)·다주면(多朱面)·문학면(文鶴面)·남동면(南洞面)·용유면(龍游面) 등에서 만세시위가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24일 오후 2시부터 계양면 장기리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심혁성(沈爀誠)은 장터에 모인 군중 300여 명을 규합해 태극기를 휘두르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시위대는 일제 경찰에 심혁성의 석방을 요구하였고, 임성춘(林聖春)은 일제 경찰과의 대화를 통해 심혁성을 몰래 탈출시키고자 하였다. 결국 시위대 일부가 일제 경찰을 공격하는 동안 심혁성이 구출되었다. 그러자 일제 경찰이 칼을 빼들고 시위대를 공격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은선(李殷先)이 칼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이에 흥분한 시위대가 일제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가격하였다. 일제 경찰은 흥분한 시위대를 물리치고 다시 심혁성을 붙잡아 주재소로 끌고 갔다. 한편 이은선의 사망소식을 들은 친척 이담(李墰)은 사망 원인을 일제 경찰에게 묻기 위해 면사무소에 의뢰하여 회람문을 작성하고, 이를 각 마을에 돌렸다. 밤 12시경 약 200명의 주민들이 계양면사무소에 집결하였으나, 일본어 통역을 담당할 면사무소 서기 이경응(李敬應)은 이에 응하지 않고 도망갔다. 그러자 이담이 “이경응의 집을 파괴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때 이담·최성옥(崔成玉)·채규명(蔡奎明)·전원순(全元順) 등과 함께 시위대를 이끌고 선주지리(仙住地里)의 이경응의 집으로 가서, 대문의 기둥과 지붕만을 남겨둔 채 안방 벽과 문 등을 비롯한 건물 대부분을 파괴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고, 1919년 10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벌금 20원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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