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 세종특별자치시기념 공간
연서 효교비


연서 효교비 전경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공공누리 제1유형
영조 임금은 왜 신하의 고향 마을 이름을 '효교동'으로 바꿔 주었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연서 효교비는 세종시 연서면 기룡리에 있는 비석으로,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2호입니다. 영조 때 대사헌을 지낸 홍상직은 조상의 묘를 성묘하러 다니느라 종종 대궐에 오지 못했는데, 그 사연을 들은 영조가 그의 효성에 크게 감동해 1772년 그의 고향 마을 이름을 '효교동(孝橋洞)'으로 고쳐 부르도록 했습니다. 후손들은 이를 기념해 이듬해인 1773년 이 비석을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1984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세종시 출범 후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다시 지정되었습니다.
연서 효교비는 신하의 효심에 감동한 임금이 마을 이름까지 바꿔 준 흔치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조선시대에 '효'라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를 보여줘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비석에 새겨진 글자와 세운 연도(1773)
- '효교동'이라는 마을 이름이 남긴 흔적
- 충청남도에서 세종시로 지정 주체가 바뀐 기록
- 홍상직과 관련된 안내판 내용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홍상직, 영조
- 관련 사건: 효교동 마을 이름 하사(1772), 연서 효교비 건립(1773)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연서 효교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연서 효교비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연서 효교비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연서 효교비은(는) 오늘날 세종특별자치시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이 장소와 관련된 옛날 사람들과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연서 효교비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연서 효교비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