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서울특별시 노원구고분·능묘
서울 초안산 분묘군

양반부터 서민, 궁궐 내관과 상궁까지 신분에 상관없이 1,000기가 넘는 무덤이 한 산에 모여 있다면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서울 초안산 분묘군은 15세기 이후 조선시대에 걸쳐 서민·중인·내관·상궁·사대부까지 다양한 신분층이 함께 묻힌 1,000기 이상의 무덤군이다. 17세기 내관이었던 승극철 부부의 묘와 비석이 남아 있어 내시 계층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수백여 기의 상석·문인석·비석·동자상 등 다양한 석물이 남아 있어 조선시대 묘제와 석물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2002년 3월 9일 사적 제440호로 지정됐다.
신분에 상관없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한 산에 함께 묻혔다는 사실을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방식이 신분에 따라 어떻게 같고 달랐는지 견주어 볼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1,000기가 넘는 다양한 형태의 무덤
- 17세기 내관 부부의 묘와 비석
- 상석·문인석·비석·동자상 등 다양한 석물
- 양반부터 서민까지 섞여 있는 묘역 전체 풍경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승극철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서울 초안산 분묘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서울 초안산 분묘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서울 초안산 분묘군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서울 초안산 분묘군은(는) 노원구의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서울 초안산 분묘군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서울 초안산 분묘군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