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서울특별시 마포구문화유산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봉우리가 한때는 가장 슬픈 처형장이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근현대
양화나루는 원래 버드나무가 우거져 '양화답설'이라 불리던 한강의 나루였고, 그 옆 잠두봉은 봉우리 모양이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루 아래로는 조세로 걷은 곡식과 각종 물자가 배로 운송됐다. 그러나 1866년 병인양요로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진출했다가 물러나자,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가 더럽혔던 땅을 서학인의 피로 씻음이 마땅하다'며 잠두봉에 형장을 세워 수천 명의 천주교인을 처형했다. 1997년 11월 11일 사적 제399호로 지정됐다.
누에 머리를 닮은 봉우리라는 이름의 유래와, 그 자리가 조선을 대표하는 순교지가 된 사연을 함께 살펴보면, 같은 장소가 평화로운 나루터에서 비극의 현장으로 바뀐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누에 머리 모양을 닮은 잠두봉의 봉우리 지형
- 한강을 따라 물자가 오가던 옛 나루터 자리
- 1866년 병인박해 순교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
- 사적 제399호 지정 표지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잠두봉은 한강변에 돌출한 봉우리로, 아래로 나루가 있어 물자 운송에 쓰였고 위쪽은 강을 내려다보는 지형임이 위키백과 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강을 내려다보는 돌출 지형이라는 특징이 병인박해 당시 처형 장소로 선택된 이유(서양 세력이 침입했던 강을 내려다보는 자리를 상징적으로 이용)와 직접 연결된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흥선대원군
- 관련 사건: 병인양요(1866), 병인박해(1866)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은(는) 마포구의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