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고성지


서울 양천고성지_1 (촬영년도 : 2015년)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공공누리 제1유형
안양천이 한강과 만나는 바로 그 자리에 낮은 봉우리가 있고, 그 위에 오래된 성터가 있다면 그 성은 왜 하필 그 자리에 세워졌을까요?
② 현재 위치 살펴보기
지도로 보기
공식 안내자료의 위치예요. 정확한 사건 발생 지점을 뜻하지 않아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출처 보기 ↗
지금의 장소
서울 양천고성지
서울 강서구 가양동 산8-4번지 외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고대
서울 양천고성지는 삼국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시대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산성이다. 성이 있는 궁산은 안양천이 한강과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해발 약 74m의 나지막한 봉우리로, 산의 북쪽은 한강 방향으로 경사가 급하고 남쪽은 완만하다. 산봉우리를 그대로 두른 테뫼식 산성으로, 성벽 길이는 약 218~220m다. 행주산성·파주 오두산성과 함께 한강 어귀를 지키던 중요한 성이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양천현의 주산이라는 뜻에서 '궁산'이라 불렸다. 1992년 3월 10일 사적 제372호로 지정됐다.
강물 두 줄기가 만나는 지점의 낮은 봉우리에 성을 쌓았다는 사실을 통해, 옛사람들이 한강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기 위해 지형을 정확히 골라 성을 세웠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의 지형
- 한강 쪽으로 급하게 기운 궁산의 북쪽 경사
- 산봉우리를 그대로 두른 테뫼식 성벽
- 행주산성·오두산성과 이어지는 한강 하구 방어망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궁산이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의 74m 봉우리로, 북쪽은 급경사·남쪽은 완경사라는 사실이 위키백과 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의 봉우리라는 지형이 한강 어귀를 지키는 방어 기능(행주산성·오두산성과 함께)과 직접 연결된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권율
- 관련 사건: 임진왜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서울 양천고성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서울 양천고성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서울 양천고성지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서울 양천고성지은(는) 강서구의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서울 양천고성지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서울 양천고성지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