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서울특별시 동작구기념 공간
사육신 역사공원

고문 끝에 처형된 신하들의 시신을, 다른 신하가 몰래 거둬 묻어줬다면 그 용기는 얼마나 컸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사육신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돼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여섯 신하(성삼문·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다. 세종이 어린 손자 단종을 부탁하고 세상을 떠났으나 단종이 강제로 폐위되자, 이들은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세조를 없애고 단종을 복위시키려 했다. 1456년 6월 거사를 계획했으나 밀고자 김질의 고발로 발각돼, 참혹한 고문 끝에 새남터에서 처형되고 일부는 거열형까지 당했다. 이 일에 연루돼 500~800여 명이 처벌받았고 가족들은 노비나 기생으로 분배됐다.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이 몰래 이들의 시신을 거둬 지금의 노량진에 묻었으며, 정조 때인 1782년 이들을 기리는 신도비가 세워졌다.
죽음을 무릅쓰고 처형된 신하들의 시신을 몰래 거둬 묻어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권력의 보복이 두려운 상황에서도 의리를 지키려 한 사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김시습이 몰래 시신을 묻었다는 노량진의 묘역
- 1782년 정조 때 세워진 추모 신도비
- 성삼문·박팽년 등 여섯 신하의 이름
- 1456년 발각된 단종 복위 거사의 경과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김시습, 단종, 세조
- 관련 사건: 단종 복위 운동(1456)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사육신 역사공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사육신 역사공원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사육신 역사공원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사육신 역사공원은(는) 동작구의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이 장소와 관련된 옛날 사람들과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사육신 역사공원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사육신 역사공원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