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산성


벽화산성지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공공누리 제1유형
가야 때 쌓은 성이 조선시대에 다시 쌓이고, 그로부터 300년 뒤 또 한 번 고쳐 쌓였다면 몇 개의 시대를 거친 것일까요?
② 현재 위치 살펴보기
지도로 보기
공식 안내자료의 위치예요. 정확한 사건 발생 지점을 뜻하지 않아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출처 보기 ↗
지금의 장소
벽화산성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하리 산113-2 외 2필지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여러 시대
의령 벽화산성지는 벽화산 줄기의 최고봉과 가운데 봉우리에 쌓은 두 개의 산성(상벽화성·하벽화성)으로, 가야 때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 22년(1589) 임진왜란 직전 의령읍성을 쌓으면서 전란에 대비해 부분적으로 고쳐 쌓았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는 홍의장군 곽재우가 이 산성을 고쳐 쌓아 의병을 거느리고 수천 명의 왜적을 무찔렀던 전승지로 유명하다. 이후 고종 13년(1876) 크게 다시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2000년 12월~2001년 2월 경남문화재연구원 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성(하한은 통일신라시대)과 조선시대성 두 시기의 성이 함께 확인됐으며, 조선시대 성은 폐기된 삼국시대 성터를 기단으로 삼아 쌓은 것으로 밝혀졌다.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64호로 지정됐다.
가야시대에 처음 쌓인 성이 조선시대 전란 때 다시 쌓이고 19세기에도 또 한 번 고쳐 쌓였다는 사실을 통해, 산 정상의 방어 거점이 시대를 넘어 계속 쓸모 있게 활용됐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벽화산 최고봉과 가운데 봉우리에 남은 상벽화성·하벽화성
- 폐기된 삼국시대 성터를 기단으로 쌓은 조선시대 성벽
- 곽재우가 수천 명의 왜적을 무찔렀다는 전승지
- 1876년 크게 다시 쌓았다는 기록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벽화산 최고봉과 가운데 봉우리에 쌓은 산성이라는 입지가 국가유산포털·백과 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산봉우리라는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 곽재우의 항전까지 이 자리가 계속 방어 거점으로 쓰인 핵심 이유로 확인된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곽재우
- 관련 사건: 임진왜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벽화산성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벽화산성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벽화산성이(가) 옛날에 어떻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나요?
- 벽화산성은(는) 의령군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벽화산성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벽화산성을(를) 소개한다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