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 통영시전투 현장
한산도 제승당

73척의 적선 중 12척을 사로잡고 47척을 불태운 전투가, 좁은 물목 하나에서 벌어졌다면 그 지형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② 현재 위치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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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장소
제승당
대한민국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한산일주로 70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이순신이 삼도 수군을 지휘하던 곳으로, 1593년부터 1597년까지 약 4년간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으로 삼아 해상 제어권을 유지했다. 1592년 7월 8일 조선 수군은 견내량(좁은 물목)에서 조선 수군을 이 물목으로 유인해 넓은 바다인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낸 뒤 학익진을 펼쳐 대승을 거뒀는데, 이를 한산대첩이라 부른다. 이 전투에서 왜선 73척 중 12척을 사로잡고 47척을 불태웠다. 제승당은 1597년 폐진됐다가 142년 뒤인 1739년 통제사 조경이 중건했으며, 지금 건물은 1976년 10월 재건된 것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3호로 지정됐다.
좁은 물목(견내량)으로 적을 유인한 뒤 넓은 바다로 끌어내 진법을 펼쳤다는 사실을 통해, 좁은 지형과 넓은 지형을 함께 이용하는 전략이 대승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이순신이 4년간 본영으로 삼았던 제승당 자리
- 견내량 좁은 물목에서 한산도 앞바다로 이어지는 지형
- 1739년 중건, 1976년 재건된 건물의 역사
- 왜선 73척 중 47척을 불태운 한산대첩의 전과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견내량이라는 좁은 물목에서 한산도 앞 넓은 바다로 이어지는 지형이라는 사실이 위키백과 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좁은 물목으로 적을 유인한 뒤 넓은 바다에서 학익진을 펼치는 전술이 이 지형(좁은 해협+넓은 바다)의 조합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연결이 확인된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이순신, 조경
- 관련 사건: 임진왜란, 한산대첩(1592)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한산도 제승당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한산도 제승당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한산도 제승당이(가) 옛날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여 주는 증거를 무엇에서 찾을 수 있나요?
- 한산도 제승당은(는) 통영시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한산도 제승당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한산도 제승당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