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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 함양군전통 가옥

일두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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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두고택 - 장소 설명을 바탕으로 한 삽화
실제 장소 사진
일두고택 — 함양 일두고택 — 사랑채

함양 일두고택 — 사랑채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공공누리 제1유형

부관참시라는 최악의 형벌을 당한 학자가, 훗날 나라를 대표하는 다섯 유학자 중 한 명으로 존경받는다면 어떨까요?

② 현재 위치 살펴보기

지도로 보기

지도를 불러오는 중입니다…

공식 안내자료의 위치예요. 정확한 사건 발생 지점을 뜻하지 않아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출처 보기 ↗

지금의 장소

일두고택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길 50-13(지곡면)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일두고택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관료인 정여창(호 일두)이 태어난 자리에 후손들이 다시 지은 집이다. 사랑채·안사랑채·안채·아래채·곳간·사당으로 이뤄져 있으며, 안채는 1690년, 사랑채는 1843년 다시 지어졌다. 정여창은 갑자사화에 연루돼 부관참시(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베는 형벌)를 당했으나, 성리학사에서 김굉필·조광조·이언적·이황과 함께 '동방오현'으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1984년 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됐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재지정됐다.

죽은 뒤에도 무덤이 파헤쳐지는 형벌을 당했던 학자가, 훗날 나라를 대표하는 다섯 유학자 중 한 명으로 존경받게 됐다는 사실을 통해, 한 사람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시대에 따라 완전히 뒤바뀔 수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1690년 다시 지어진 안채와 1843년 지어진 사랑채
  • 정여창을 모신 사당
  • 부관참시를 당했던 갑자사화의 아픈 역사
  • '동방오현'으로 칭송받게 된 후대의 평가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정여창
  • 관련 사건: 갑자사화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일두고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일두고택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일두고택이(가) 옛날에 어떻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나요?
  • 일두고택은(는) 함양군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일두고택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일두고택을(를) 소개한다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