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 하동군생활사 공간
화개장터 역사생활문화권

강 위 돛단배가 더는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딱 그 지점에 장이 섰다면, 그 장은 무엇을 사고팔던 곳이었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여러 시대
화개장터는 화개천이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열리던 장으로, 섬진강을 오가던 행상선(장사배)이 거슬러 올라올 수 있는 가장 상류 지점에 자리해 이곳에 큰 장터가 들어섰다. 5일장의 시초는 성종(1457~1494) 초 전라도 무안·나주에서 오랜 재해를 견디지 못한 유민들이 집에 있던 곡식과 채소를 가지고 나와 필요한 물건과 바꾸면서 장시가 만들어진 데서 비롯됐다. 1770년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에는 하동에 화개장(1·6일)·두치장(2·7일)·횡포장(3·8일)·주교장(5·10일) 등 시장권이 형성됐고, 이 지역 특성상 수로교통의 요지인 섬진강을 따라 일렬로 배치됐다고 기록돼 있다. 해방 이전에는 전국 7대 시장 중 하나로, 섬진강 수로를 따라 지리산 산나물·약재, 전라도 쌀·보리, 남해 연안 미역·고등어 등이 오가는 교역의 중심지였다.
강 위 돛단배가 더는 올라갈 수 없는 자리에 큰 장이 섰다는 사실을 통해, 강물의 흐름이라는 지형 조건이 장이 서는 자리 자체를 결정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화개천이 섬진강과 합류하는 지점
- 행상선이 거슬러 올라올 수 있었던 가장 상류 지점이라는 위치
- 지리산 산나물·전라도 쌀·남해 해산물이 오가던 교역 물품
- 해방 이전 전국 7대 시장이었다는 규모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화개천과 섬진강이 합류하며, 섬진강 행상선이 오를 수 있는 가장 상류 지점이라는 지형 사실이 향토·공공 언론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강 수로 운항이 가능한 최상류 지점이라는 지형이 배로 오가는 물자 교역의 중심 시장이 이 자리에 형성된 핵심 이유로 자료에 명시돼 있다.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화개장터 역사생활문화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화개장터 역사생활문화권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화개장터 역사생활문화권이(가) 옛날에 어떻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나요?
- 화개장터 역사생활문화권은(는) 하동군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화개장터 역사생활문화권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화개장터 역사생활문화권을(를) 소개한다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