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 김해시성곽·산성
김해읍성 북문

450년 가까이 남해안을 지키던 성문이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다가, 90억 원을 들여 그대로 되살아났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김해읍성 북문은 조선 세종 때인 1443년,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남해안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됐다. 약 450년간 유지되다가 일제강점기에 철거됐다. 세종실록과 역사 문헌을 토대로 복원 작업이 진행돼, 부지 보상과 착공을 거쳐 2008년 5월 1일 준공식을 가졌으며 복원에는 9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복원된 북문은 본체(체성) 좌우 각 19m(총 38m)·높이 3.5~4m, 문 앞 반달 모양의 옹성은 둘레 6m·폭 7.1~7.5m·높이 4m 규모이며, 기와지붕(문루)과 방패 역할을 하는 여장(성벽 위 담)도 갖췄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성문을 세종실록 등 옛 문헌을 근거로 90억 원을 들여 원래 규모 그대로 되살렸다는 사실을 통해, 사라진 문화유산도 정확한 기록만 있다면 다시 되살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반달 모양으로 복원된 옹성
- 기와지붕(문루)과 여장(방패 역할의 담)
- 세종실록 등 문헌을 근거로 한 복원 과정
- 1443년 왜구 방어를 위해 처음 지어진 배경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남해안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됐다는 사실이 공공 언론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남해안에 가까운 입지라는 지형적 조건이 왜구 방어라는 읍성 축조 목적과 직접 연결된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사건: 김해읍성 북문 축조(1443), 김해읍성 북문 복원(2008)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김해읍성 북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김해읍성 북문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김해읍성 북문이(가) 옛날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여 주는 증거를 무엇에서 찾을 수 있나요?
- 김해읍성 북문은(는) 김해시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김해읍성 북문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김해읍성 북문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