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 유적


김해 봉황동 유적 — 김해 봉황동 유적_전경1 (촬영년도 : 2015년)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공공누리 제1유형
조개껍질과 생활 쓰레기가 쌓인 자리가, 알고 보니 한 나라의 도읍이었던 마을 터와 함께 있다면 어떨까요?
② 현재 위치 살펴보기
지도로 보기
공식 안내자료의 위치예요. 정확한 사건 발생 지점을 뜻하지 않아요.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출처 보기 ↗
지금의 장소
김해 봉황동 유적
경남 김해시 봉황동 253번지 외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고대
김해 봉황동 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이어진 유적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2호 '김해회현리패총'으로 처음 지정됐다. 2001년 2월 5일 김해패총과 금관가야의 집단 취락지인 봉황대를 합쳐 '김해봉황동유적'으로 확대 지정되고 이름이 바뀌었다. 1907년 이마니시 류의 조사 이후 1934~1935년 일본 학자들이 매장지를 조사·발굴해 조개더미(패총)의 성격이 드러났다. 패총은 조개껍질과 생활 쓰레기가 함께 버려져 쌓인 곳으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리다.
조개더미로만 알려졌던 곳이 사실은 한 나라의 마을 터(봉황대)와 함께 있는 유적이라는 사실을 통해, 겉보기엔 쓰레기 더미 같은 흔적도 한 나라 사람들의 생활 전체를 알려주는 자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조개껍질과 생활 쓰레기가 쌓인 패총층
- 금관가야의 집단 취락지였던 봉황대
- 1934~1935년 발굴로 드러난 패총의 성격
- 2001년 패총과 취락지를 합쳐 확대 지정된 경위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조개더미(패총)가 형성된 유적이라는 사실이 국가유산포털·백과 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패총 형성은 해안·강가에서 조개 등 수산 자원을 채집해 생활했음을 보여주는 지형적 근거이며, 이것이 이 지역의 취락지 형성과 직접 연결된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사건: 봉황동 유적 발굴(1934~1935)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김해 봉황동 유적에 대해 무엇이 더 궁금한가요?
- 김해 봉황동 유적이(가) 옛날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여 주는 증거를 무엇에서 찾을 수 있나요?
- 김해 봉황동 유적은(는) 김해시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김해 봉황동 유적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김해 봉황동 유적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