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 대구광역시 수성구근현대 유산
수성못 일제강점기 수리시설 역사권

한 일본인이 가족과도 떨어져 움막에 살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저수지가, 지금은 대구 시민의 쉼터가 됐습니다.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근현대
수성못은 홍수와 가뭄 피해가 계속되던 '수성들'을 살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인 1925년 완공된 저수지다. 1915년 대구에 정착한 미즈사키 린타로가 조선인 4명과 함께 수성수리조합을 만들어 추진했고, 경상북도지사에게 거절당하자 조선 총독을 직접 만나 공사비 1만 2천 엔을 지원받아 1924년 9월 착공, 1925년 4월 완공했다(둘레 2km·면적 108만 5천㎡·저수량 70만t). 미즈사키는 완공 후에도 못 근처 움막에서 가족과 떨어져 살며 관리에만 매달렸고, 1939년 '수성못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 옆에 묻혔다. 지금도 매년 4월 2일 그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다.
농지의 물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저수지가, 지금은 대구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 속 호수공원으로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하게 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저수지 조성 목적(수성들의 홍수·가뭄 방지)을 설명하는 안내판
- 미즈사키 린타로의 묘소와 매년 추모행사
- 1925년 완공 당시 규모(둘레 2km·70만t)와 현재 호수공원 모습의 비교
- 농업용 저수지에서 시민 휴식공간으로 바뀐 변화 과정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수성못이 만들어진 자리는 원래 홍수·가뭄 피해가 반복되던 저지대 평야('수성들')였다.
역사와의 연결: 이 저지대 평야가 계속 물 피해를 겪었다는 지형적 조건이 저수지 건설이라는 역사적 사업(1925년 수성못 축조)의 직접적 이유였다는 점이 출처(위키백과·문화일보)로 명확히 확인된다 — '평야→치수 시설'로 이어진 사례.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미즈사키 린타로
- 관련 사건: 수성못 축조(1925)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수성못 일제강점기 수리시설 역사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수성못 일제강점기 수리시설 역사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수성못 일제강점기 수리시설 역사권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수성못 일제강점기 수리시설 역사권은(는) 수성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수성못 일제강점기 수리시설 역사권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수성못 일제강점기 수리시설 역사권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