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 부산광역시 영도구기념 공간
영도유격부대 6·25 기억공간

군번도 계급도 없이 싸운 부대가, 2년 넘게 적 4,800여 명을 상대로 전과를 올렸다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현대
영도유격부대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영도 태종대에 훈련장과 본부를 두고 극비리에 창설한 유격대다. 1951년 3월 한철민 육군 소령의 주도로, 1·4후퇴 때 월남한 함경남·북도·강원도 북부 등 동해안 3도 출신 반공청년 1,200명이 지원해 창설됐다. 이들은 3~4개월가량의 특수 훈련을 받은 뒤 군번도 계급도 없이 6·25전쟁 비정규전에 투입돼, 2년 1개월 동안 적 4,800여 명 사살·855곳의 군사통신시설 파괴·1,100여 건의 무기류 노획이라는 전과를 올렸다. 1952년 12월 정전협정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부대는 해체됐고, 정전 후 공식 문서가 공개되지 않아 오랫동안 부대원의 신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군번도 계급도 없이 싸운 1,200명이 2년 넘게 큰 전과를 올렸는데도 오랫동안 그 존재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 전쟁의 숨은 곳에서 이름 없이 싸운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태종대에 있었던 극비 훈련장·본부의 흔적
- 동해안 3도 출신 반공청년 1,200명이 모인 창설 배경
- 2년 1개월간의 비정규전 전과 기록
- 정전 후에도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대원들의 신원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태종대의 외딴 해안 지형에 극비 훈련장·본부를 뒀다는 사실이 공공 언론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외딴 해안이라는 지형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비밀리에 유격대를 훈련시키는 기능의 핵심 조건이었다는 연결이 자료에 명시돼 있다.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한철민
- 관련 사건: 6·25전쟁, 1·4후퇴, 영도유격부대 창설(1951)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영도유격부대 6·25 기억공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영도유격부대 6·25 기억공간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영도유격부대 6·25 기억공간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영도유격부대 6·25 기억공간은(는) 영도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이 장소와 관련된 옛날 사람들과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영도유격부대 6·25 기억공간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영도유격부대 6·25 기억공간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