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 부산광역시 수영구기념 공간
25의용단

지휘관이 성을 버리고 달아났는데, 남은 병사와 백성들이 바위 앞에 모여 피로 맹세하고 7년을 싸웠다면 어떨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25의용단은 임진왜란 때 수영성을 지키며 싸우다 순절한 25명의 충절을 기리는 제단으로,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됐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좌수사 박홍은 성을 버리고 달아났는데, 이때 수병과 성민 25명이 성문 밖 선서바위에 모여 피로써 맹세한 뒤 바다와 육지에서 7년간 왜적에 맞서 싸웠다. 광해군 원년(1609) 지방민들의 청원으로 이 사연이 알려지자, 동래부사 이안눌이 이 일들을 모아 『정방록』을 만들고 이들의 집 대문에 '의용(義勇)' 두 글자를 써 붙여 그 뜻을 기리도록 했다.
지휘관이 도망친 자리에서 이름 없는 병사와 백성 25명이 스스로 맹세하고 7년을 싸웠다는 사실을 통해, 나라를 지킨 것이 반드시 높은 자리의 사람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25명이 피로 맹세했다는 '선서바위' 이야기
- 동래부사 이안눌이 엮은 『정방록』의 기록
- 각 집 대문에 붙였다는 '의용(義勇)' 두 글자
- 경상좌수사 박홍이 도망친 사건과의 대비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인물: 박홍, 이안눌
- 관련 사건: 임진왜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25의용단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25의용단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25의용단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25의용단은(는) 수영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이 장소와 관련된 옛날 사람들과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25의용단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25의용단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