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 부산광역시 사하구문화유산
아미산 봉수대 옛터

산꼭대기에서 피운 연기 하나가, 옆 고을 산꼭대기로, 또 그 옆 고을로 이어지며 소식을 전했다면 얼마나 멀리까지 갔을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조선 시대
아미산 봉수대는 다대포 동북쪽 두송산(아미산) 해발 178.5m 지점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봉수(당시 이름 응봉)가 '동쪽으로 오해야항에 응하고, 서쪽으로 김해의 성화례산에 응한다'고 기록돼 있고, 『동래부지』에는 '응봉은 동래부 남쪽 50리, 다대진 북쪽 두송산'이라 적혀 있다. 조선시대 다대진은 국방의 요충지였고 임진왜란 때 다대포진성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1976년 10월 복원 공사를 통해 지름 20m의 화강석 석축을 쌓고, 중앙에 지름 1.5m·깊이 0.4m의 연조(불을 피우던 시설)를 복원했다.
산꼭대기라는 높은 지형 덕분에 이웃 고을의 봉수대와 서로 연기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전화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 사람들이 지형을 이용해 먼 거리까지 소식을 전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해발 178.5m 산꼭대기에 복원된 석축 봉수대
- 1976년 복원된 지름 1.5m 연조(불 피우던 시설)
- 『신증동국여지승람』·『동래부지』에 기록된 옛 이름 '응봉'
- 동쪽 오해야항·서쪽 김해 성화례산과 연결되던 봉수 신호망
이 위치가 역사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곳의 위치: 해발 178.5m 산 정상이라는 고지대 입지가 옛 문헌(신증동국여지승람·동래부지)과 부산시 공식 자료로 확인됨.
역사와의 연결: 높은 산 정상이라는 지형이 이웃 봉수대와 시각적으로 신호(연기·불)를 주고받는 봉수 통신 기능의 핵심 조건이었다는 연결이 옛 문헌에 명시돼 있다.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아미산 봉수대 옛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아미산 봉수대 옛터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아미산 봉수대 옛터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아미산 봉수대 옛터은(는) 사하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아미산 봉수대 옛터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아미산 봉수대 옛터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