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 부산광역시 중구역사 경관
광복동·남포동 피란수도 생활문화권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동네의 이름이, 해방 뒤에는 '빛을 되찾다'는 뜻으로 바뀌었다면 어떨까요?
⑥ 내가 발견한 것 정리하기
탐구 코치
③ 옛날에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 속 장소
시대: 현대
광복동은 1678년 두모포에서 옮겨온 초량왜관이 1876년 강화도조약 때까지 198년간 있던 자리로, 이후 일본인 거주지(거류지)가 됐다. 해방 후 이 지역이 일본인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번화한 동네였음을 되짚어, 나라를 되찾았다는 뜻의 '광복동(光復洞)'이라는 지금 이름이 붙었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이 '피란수도'가 됐을 때 전쟁 극복과 재건에 관한 주요 결정과 회의가 이 일대에서 이뤄졌으며, 동광동·중앙동 등과 함께 부산 근현대사의 출발점이자 1990년대 초반까지 부산 제일의 상업지구이자 행정·경제·사회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해방 전 9개, 1960~70년대에는 광복동·남포동 일대에만 약 20개의 극장이 몰려 있었다.
일본인 거주지였던 동네가 해방 후 '빛을 되찾다'는 뜻의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통해, 지명 하나에도 그 땅이 겪은 역사가 그대로 새겨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것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 1678~1876년 초량왜관이 있었던 자리라는 역사
- 해방을 기려 붙여진 '광복동'이라는 지명의 유래
- 한국전쟁 피란수도 시기 주요 회의·결정이 이뤄진 거리
- 1960~70년대 약 20개 극장이 몰려 있던 번화가의 흔적
④ 이 장소와 관련된 사람·사건 찾아보기
- 관련 사건: 강화도조약(1876), 한국전쟁, 피란수도 부산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단계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⑤ 과거와 현재 비교하기
- 광복동·남포동 피란수도 생활문화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역사 흔적은 무엇인가요?
- 광복동·남포동 피란수도 생활문화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 광복동·남포동 피란수도 생활문화권의 옛 역할이나 변화를 알려 주는 증거를 두 가지 찾아볼까요?
- 광복동·남포동 피란수도 생활문화권은(는) 중구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은 광복동·남포동 피란수도 생활문화권을(를) 어떻게 다르게 바라볼까요?
- 친구에게 광복동·남포동 피란수도 생활문화권을(를) 소개한다면 어떤 흔적이나 기록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고 싶나요?
-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나요?
- 옛날에는 이곳이 어떤 역할을 했나요?
- 지금과 옛날의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