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군 이야기를 찾아볼까요?
이 지역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살펴보고 다른 지역 이야기와 비교해 보세요.
양구군 이야기 (12편)

펀치볼이라 불린 해안분지
양구군의 해안면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요. 전쟁 때 미군이 주발처럼 생긴 분지 지형을 Punch Bowl이라 불렀다는 지명 설명이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지역에 전해진 내용이므로 실제 역사 사실과 똑같다고 바로 단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공공자료에서 확인되는 장소와 기록, 사람들에게 전해진 내용을 나누어 읽어 보세요. 지도에서 해안면의 위치나 범위를 찾아보고 주변의 산, 강, 바다, 마을, 시장과 무엇이 이어져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 비슷한 장소나 생활 이야기가 있는지도 비교해 보세요.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이 이 장소를 바라보는 생각이 어떻게 다를지 질문해 보면 지역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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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뒤 새로 만들어진 현리 마을
양구군의 해안면 현리을(를) 살펴보면 지역의 생활과 변화를 알 수 있어요. 현리 일대 옛 마을이 전쟁으로 사라지거나 전쟁 뒤 집단촌으로 다시 조성된 기록이 있다. 이 내용은 공공자료에서 확인되는 사실을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지도에서 해안면 현리의 위치나 범위를 찾아보고 주변의 산, 강, 바다, 마을, 시장과 무엇이 이어져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 비슷한 장소나 생활 이야기가 있는지도 비교해 보세요.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이 이 장소를 바라보는 생각이 어떻게 다를지 질문해 보면 지역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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뽕나무가 많아 상평이라 불린 곳
양구군의 상평 옛 마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요. 뽕나무를 많이 심어 상평이라 불렸고 전쟁으로 폐동되었다는 지명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지역에 전해진 내용이므로 실제 역사 사실과 똑같다고 바로 단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공공자료에서 확인되는 장소와 기록, 사람들에게 전해진 내용을 나누어 읽어 보세요. 지도에서 상평 옛 마을의 위치나 범위를 찾아보고 주변의 산, 강, 바다, 마을, 시장과 무엇이 이어져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 비슷한 장소나 생활 이야기가 있는지도 비교해 보세요.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이 이 장소를 바라보는 생각이 어떻게 다를지 질문해 보면 지역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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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터가 있었다는 지구말
양구군의 지구말을(를) 살펴보면 지역의 생활과 변화를 알 수 있어요. 지명유래 자료에는 그네터가 있어 해안면 사람들이 함께 그네를 탔다는 기록이 있다. 이 내용은 공공자료에서 확인되는 사실을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지도에서 지구말의 위치나 범위를 찾아보고 주변의 산, 강, 바다, 마을, 시장과 무엇이 이어져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 비슷한 장소나 생활 이야기가 있는지도 비교해 보세요.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이 이 장소를 바라보는 생각이 어떻게 다를지 질문해 보면 지역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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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을 기억하는 양구
양구군의 박수근미술관을(를) 살펴보면 지역의 생활과 변화를 알 수 있어요. 양구군은 군립 박수근미술관을 운영하며 화가의 삶과 작품을 지역에서 기억한다. 이 내용은 공공자료에서 확인되는 사실을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지도에서 박수근미술관의 위치나 범위를 찾아보고 주변의 산, 강, 바다, 마을, 시장과 무엇이 이어져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 비슷한 장소나 생활 이야기가 있는지도 비교해 보세요.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이 이 장소를 바라보는 생각이 어떻게 다를지 질문해 보면 지역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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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백자와 흙을 쓰는 생활
양구군의 양구백자박물관을(를) 살펴보면 지역의 생활과 변화를 알 수 있어요. 양구군은 백자박물관을 통해 지역 도자문화와 생활용 그릇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 내용은 공공자료에서 확인되는 사실을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지도에서 양구백자박물관의 위치나 범위를 찾아보고 주변의 산, 강, 바다, 마을, 시장과 무엇이 이어져 있는지 살펴보세요. 다른 지역에 비슷한 장소나 생활 이야기가 있는지도 비교해 보세요. 옛날 사람과 오늘날 사람이 이 장소를 바라보는 생각이 어떻게 다를지 질문해 보면 지역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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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형제가 벼슬에 오른 마을, 팔랑리
함경도에 살던 이학장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지금의 양구 팔랑리에 자리를 잡았어요. 마을 사람들의 권유로 혼인을 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놀랍게도 아내가 네쌍둥이 아들을 낳았고, 몇 해 뒤에는 또 한 번 네쌍둥이를 낳아 모두 여덟 아들을 얻었대요. 이학장 부부는 여덟 아들을 정성껏 길렀고, 아이들은 무술도 뛰어나고 씩씩하게 자라났어요. 어느 해 여덟 형제는 나란히 과거에 급제하여 모두 나라의 벼슬인 낭관이 되었답니다. 사람들은 여덟 사내아이가 벼슬에 오른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곳을 여덟 팔(八)자와 사내 랑(郞)자를 써서 팔랑리라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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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물리친 이름 바꾸기, 양구 해안면
강원도 양구의 해안면은 넓고 기름진 땅이었지만 뱀이 너무 많아 사람들의 걱정이 컸어요. 아무리 뱀을 잡아도 줄어들지 않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스님이 마을에 들러 밥을 얻어먹고는 마을 사람의 고민을 듣게 되었어요. 스님은 마을 이름이 바다 해자와 언덕 안자를 쓰는 '해안'이라는 것을 듣고, 그 이름 때문에 뱀이 용이 되기 좋은 땅이 되었다고 말했어요. 스님은 뱀의 천적인 돼지를 뜻하는 돼지 해자로 이름을 바꾸라고 알려 주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스님의 말대로 이름을 바꾸자, 신기하게도 그 많던 뱀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해요. 그때부터 이 마을은 돼지 해자를 쓴 해안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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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가족처럼 여긴 현감 김현도
강원도 양구군에는 조선 시대 현감이었던 김현도를 기리는 서암사라는 사당이 있어요. 김현도는 양구에 부임한 뒤 지나치게 많은 세금 때문에 백성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조정에 세금을 줄여 달라는 상소를 올려 마침내 받아들여졌대요. 또한 김현도는 병든 어머니를 밤낮으로 간호했는데, 어느 날 꿈에 나타난 도사의 말대로 독수리가 떨어뜨려 준 물고기를 달여 드려 어머니의 병을 낫게 했다고 전해져요. 이렇게 백성을 가족처럼 여기고 효를 다했던 김현도를 기리기 위해 양구 사람들은 지금도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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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색시의 슬픈 사연이 담긴 고개, 양구 각시고개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오미리에는 각시고개라는, 원래 이름이 없던 작은 고개가 있었어요. 옛날 어느 마을에 시어머니의 심한 구박을 견디다 못한 아들이 집을 나가 버렸대요. 아들을 애타게 찾아 나선 시어머니는 오미령이라는 고개에서 매서운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시어머니를 뒤따라 신랑을 찾아 나섰던 새색시도 오미리 입구의 작은 고개에서 끝내 두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추위 속에서 세상을 떠났대요. 이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새색시가 세상을 떠난 고개를 각시고개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도 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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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가 잠든 연못, 양구 몰구지
강원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가오작리에는 몰구지라 불리는 깊은 연못이 있어요. 옛날 이 연못에는 용 한 마리가 먼저 자리 잡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찾아와 함께 살고 싶어 했대요. 용은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거북을 몰아냈고, 거북은 싸움을 피해 연못을 떠나기로 했어요. 그런데 연못을 나서던 거북은 봉황새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 흠뻑 빠져 춤을 추다가, 그만 다시 연못에 빠지고 말았대요. 사람들은 거북이 빠져 죽은 연못이라 하여 이곳을 몰구지라 불렀고, 한편으로는 용이 사는 연못이라 하여 용소라고도 부른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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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이름이 바뀐 바위, 양구 감투바위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에는 감투바위라는 바위가 있어요. 이 바위는 원래 스님들이 쓰는 고깔을 닮았다고 해서 고깔바위라 불렸는데, 근처 심곡사의 승려들이 마을에서 자주 행패를 부려 걱정거리가 되었대요. 어느 날 한 유생의 집에 머문 낯선 도인이 떠나면서, 마을 이름과 고깔바위 때문에 승려들이 번성해 문제가 생긴다는 말을 남겼어요. 그 말을 곱씹은 유생은 마을 이름을 팔랑동으로, 고깔바위는 선비의 모자를 닮았다 하여 감투바위로 고쳐 부르게 했대요. 새 이름이 널리 퍼지자 신기하게도 승려들의 행패가 차츰 줄어들었고, 그 뒤로 사람들은 이 바위를 감투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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