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군 이야기를 찾아볼까요?
이 지역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살펴보고 다른 지역 이야기와 비교해 보세요.
홍성군 이야기 (9편)

소금과 사금파리로 쫓아낸 용, 구룡리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에는 구룡리라는 마을이 있어요. 옛날 거북 모양을 닮은 구산 안쪽 연못에 용 한 마리가 살았는데, 하늘로 오르지 못한 화를 애꿎은 마을 사람들에게 풀어 늘 두려움에 떨게 했대요. 어느 날 지나가던 노스님이 마을 사람들의 하소연을 듣고, 깨진 사기그릇 조각과 소금을 잔뜩 모아 연못에 넣어 보라고 알려주었어요. 사람들이 그대로 하자 용은 따갑고 아파서 견디지 못하고 연못 밖으로 뛰쳐나와 자취를 감추었대요. 그 뒤로 마을은 평온해졌고, 사람들은 거북 구 자와 용 룡 자를 합쳐 이 마을을 구룡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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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품으로 숨은 쥐, 쥐산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면 용봉산 아래에는 쥐산이라는 작은 숲이 있어요. 옛날 용봉산에는 큰 절이 있어 스님들이 많았는데, 쌀을 씻을 때마다 흘러넘친 싸라기가 개천으로 떠내려가 그 하천을 싸라기내라 불렀대요. 싸라기가 쌓이자 온 충청도의 쥐들이 몰려들었고, 먹이를 잃은 고양이들도 뒤따라 몰려왔어요. 다급해진 쥐들은 살생을 금하는 부처님 품 안으로 들어가면 안전할 거라 생각하고 모두 절 안으로 숨어들었대요. 고양이들은 절 안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건너편에서 발만 굴렀고, 그때부터 쥐들이 숨어 지내던 절 아래 숲을 쥐산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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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로 세상과 선을 그은 선비, 홍성 먹자울
충청남도 홍성 성남리에는 임진왜란 무렵 낯선 선비 한 명이 마을로 들어와 산기슭에 초막을 짓고 살기 시작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는데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밤낮 글만 읽는 선비를 이상하게 여겼대요. 어느 날 다른 선비들이 찾아와 나라를 위해 일해 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지만, 마을 선비는 끝까지 거절했다고 해요. 그러자 한 선비가 마치 먹줄로 세상과 선을 그으려 한다며 안타까워했대요.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서야 선비가 어지러운 세상과 거리를 두고 조용히 살아가려는 깊은 뜻을 지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세월이 흘러 선비가 세상을 떠나자, 마을 사람들은 그 뜻을 기려 이 마을을 먹자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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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를 돌아보다 바위가 된 새끼 용, 고모랭이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고암리에는 고모랭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어요. 아주 먼 옛날, 비룡산 아래 용천에는 어미 용과 새끼 용이 함께 살고 있었대요. 새끼 용이 다 자라 혼자 살아가야 할 날이 오자, 어미 용은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준비했어요. 어미 용은 새끼 용에게 떠날 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새끼 용은 걱정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대요. 그 순간 천둥이 치며 새끼 용이 구름에서 떨어졌고, 며칠 뒤 그 자리에서 바위가 솟아났다고 해요. 사람들은 새끼 용이 어미를 돌아본 고개라 하여 이곳을 '고모령'이라 불렀고, 지금은 '고모랭이'라 부른다고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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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이나 마다한 벼슬자리, 왕지동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수란리는 왕지동이라고도 불려요.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나라를 함께 이끌 인재가 필요했어요. 그 무렵 초롱산 아래에는 고려의 신하였던 이성이라는 선비가 숨어 살고 있었대요. 이성계는 여러 번 사람을 보내 벼슬을 권했지만, 이성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매번 거절했어요. 결국 이성계가 직접 마을까지 찾아왔지만, 이성은 끝내 문을 열지 않았대요. 화가 난 이성계는 떠나면서도 근처의 땅을 이성의 자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다고 해요. 사람들은 임금이 다녀간 마을이라 하여 이곳을 '왕지동'이라 불렀고, 하룻밤 등불을 밝혔던 옆 마을은 '초롱산'과 '등골'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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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을 그만두고 농사를 택한 선비, 속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행정리에는 속은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어요. 조선시대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이 마을에 살던 한 선비는 벼슬길에 나아가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마음으로 밤낮없이 글공부에 힘썼대요. 마을 사람들은 선비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그가 훌륭한 관리가 되기를 기대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글 읽는 소리가 뚝 끊겼고, 사람들이 찾아가 보니 연산군이 물러나고 새 임금이 즉위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였어요. 선비는 이제 나 같은 사람이 벼슬에 나갈 필요가 없다며 책을 내려놓고 호미를 들었대요. 사람들은 스스로 평범한 사람으로 남겠다는 선비의 뜻을 기려, 이 마을을 '속은'이라 불렀다고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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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 입은 여인의 부탁, 아홉골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읍내리에는 아홉골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있어요. 옛날 해 질 무렵, 한 선비가 이 골짜기를 지나가다가 소복을 입은 여인이 구슬프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대요. 선비가 사연을 물으니 여인은 알쏭달쏭한 대답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어요. 놀란 선비는 근처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다시 그 자리를 찾아가 보았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는 여인이 입고 있던 소복만 남아 있었고, 옷에는 이 옷을 태워 재를 아홉 곳에 나누어 묻고 백일기도를 올려 달라는 글이 적혀 있었대요. 선비는 여인의 부탁대로 소복을 태워 아홉 곳에 나누어 묻고 정성껏 기도를 올렸어요. 그 뒤로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아홉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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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바꾸고 그릇을 구운 사람들, 대풀무골
충청남도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에는 대풀무골이라는 곳이 있어요. 조선이 세워진 뒤 고려의 왕족이었던 왕씨들은 위험을 피해 몸을 숨겨야 했는데, 어느 날 배를 타고 피하던 중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물이 차오르는 위기를 맞았대요. 이때 한 사람이 용감하게 물속으로 뛰어들어 구멍을 막은 덕분에 모두 무사히 남쪽 바닷가에 닿을 수 있었다고 해요. 이후 왕씨들은 성을 전씨나 성씨로 바꾸고 여러 곳에 흩어져 조용히 살아갔는데, 양곡리에 자리 잡은 사람은 그릇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갔지요. 시간이 흐르며 그릇 굽는 가마가 앞산 곳곳에 다섯 개나 늘어났고, 사람들은 이곳을 큰 가마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대풀무골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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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서 잉어가 솟아난 이봉들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황곡리에는 이봉들이라는 들판이 있어요. 옛날 이곳에 살던 가난한 나무꾼은 늘 자기 논밭을 갖는 것이 소원이어서 밤낮으로 나뭇짐을 지어 날랐대요. 오랜 시간 부지런히 일한 끝에 나무꾼은 마침내 논 여러 마지기를 살 수 있었지만, 무리하게 일하느라 나무꾼과 어머니의 몸이 모두 쇠약해지고 말았지요. 나무꾼 부부가 어머니의 회복을 빌며 정성을 다하던 어느 날 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들녘으로 나가 보라고 일러 주었어요. 다음 날 들에 나가 보니 없던 샘이 솟아나고 그 안에서 잉어 한 마리가 뛰어올랐는데, 이 잉어를 달여 드리자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대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들을 이봉들이라 부르고, 샘은 용천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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