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 이야기를 찾아볼까요?
이 지역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살펴보고 다른 지역 이야기와 비교해 보세요.
공주시 이야기 (8편)

소금장수 아버지를 찾아낸 학자 서기
공주의 공암굴에는 특별한 사연이 전해져요. 소금장수 한 사람이 비를 피해 이 굴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헤어졌어요. 얼마 후 여인은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훗날 큰 학자가 된 서기였어요. 서기는 자라면서 자기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몰랐어요. 청년이 되자 공암굴 옆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피며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어요. 마침내 옛일을 이야기하는 소금장수를 만나 아버지임을 확인하고, 두 사람은 함께 살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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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은혜로 맺어진 오누이, 남매탑
계룡산의 한 스님이 목에 비녀가 걸려 괴로워하는 호랑이를 도와준 적이 있었어요. 다음 날 그 호랑이는 기절한 여인을 등에 태우고 스님에게 데려왔어요. 스님이 정성껏 간호해 여인을 깨우고 집으로 데려다주었는데, 여인은 혼인 대신 스님을 따라 불도를 닦고 싶다고 했어요. 부모님도 여인의 뜻을 꺾지 못했어요. 결국 두 사람은 친남매처럼 지내며 평생 함께 수행했대요. 훗날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인연을 기억하려고 돌탑 두 개를 세우고 남매탑이라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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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지킨 최초의 승병장 영규대사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영규는 한 노스님에게서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스님이 되기로 결심했어요. 열심히 무예와 불도를 닦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규대사는 계룡산의 스님들을 모아 앞장서 싸우기로 했어요. 오백 명이 넘는 승병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청주성 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큰 승리를 거두었어요. 영규대사는 이어진 금산 전투에서도 용감히 싸우다 크게 다쳤고, 갑사로 돌아가던 길에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의 용기는 지금도 공주 사람들 사이에서 자랑스럽게 전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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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울며 따라온 강가, 곰나루
공주 근처 산속에서 나무꾼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굴속에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낯선 여인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여인은 나무꾼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었고, 둘은 그렇게 인연을 맺어 함께 살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나무꾼이 몰래 뒤따라가 보니, 그 여인은 사실 사람으로 변한 곰이었어요. 깜짝 놀란 나무꾼은 산 아래로 도망쳤고, 곰은 슬피 울며 뒤쫓아 왔어요. 나무꾼이 강물에 뛰어들자 곰도 따라 물속에 들어갔지만, 헤엄을 치지 못해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대요. 사람들은 곰이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부르다 죽은 곳이라 하여 이곳을 곰나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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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닭이 알을 품은 산, 계봉마을
공주 화월리에는 4대째 외아들인 김첨지가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자식이 딸만 태어나 집안 어른들의 걱정이 컸지요. 어느 날 김첨지는 꿈속에서 두 마리 용과 황금빛 닭이 나무 위에서 알을 품는 모습을 보았어요. 얼마 뒤 부인이 아이를 가졌고, 연이어 두 해 동안 아들을 하나씩 낳았대요. 마을 사람들은 조상의 산소 자리가 '금빛 닭이 알을 품은 모양'이라서 귀한 아들을 얻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그 산을 닭 볏을 뜻하는 계봉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계봉마을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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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깨자 도망간 금비둘기, 유구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은 옛날에 '창말'이라고 불렸어요. 어느 날 마을에 도둑 떼가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자, 나라에서 군사들을 보내 도둑을 쫓아내고 마을을 지키게 했어요. 군사들은 좁은 마을 길을 넓히려고 큰 바위를 깨뜨렸는데, 그 순간 바위 속에서 금빛 비둘기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고 전해져요. 그 뒤로 군사들이 이상한 병에 걸려 고생했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마을 이름을 유구로 바꾸고 제사를 지내라고 알려주었어요. 사람들이 그 말을 따르자 병이 씻은 듯이 나았고, 그때부터 이 마을은 유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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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이 알려준 새 도읍, 불당마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는 옛날에 불당리라고 불렸어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이곳 계룡산 자락에 새 나라의 도읍을 지으려고 공사를 시작했대요. 그런데 어느 날 밤 이성계의 꿈에 계룡산 산신령이 나타나, 이곳은 도읍터가 아니니 한양으로 옮기라고 말했다고 전해져요. 산신령의 딸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 주었고, 이성계는 꿈에서 깬 뒤 공사를 멈추고 한양으로 향했어요. 이성계는 산신령과 딸을 생각하며 그 자리에 불당을 짓고 초상을 모셨는데, 그래서 마을 이름이 불당리가 되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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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용의 냄새가 남긴 이름, 구리내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는 옛날에 구리내라고 불렸어요. 아주 오래전 당나라 장수가 백제를 이기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금강에 사는 용을 잡으면 이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대요. 장수는 백마를 미끼로 써서 금강의 용을 낚아 올렸고, 하늘로 솟았던 용은 지금의 동대리 자리에 떨어져 죽고 말았어요. 죽은 용의 몸에서 심한 냄새가 온 마을에 퍼지자, 사람들은 이곳을 구린내 또는 구리내라고 부르기 시작했대요. 사람들은 이 일이 있고 얼마 뒤 백제가 힘을 잃고 무너졌다고 이야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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