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이야기를 찾아볼까요?
이 지역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살펴보고 다른 지역 이야기와 비교해 보세요.
청주시 이야기 (11편)

아들을 바라며 새긴 바위, 애기바위
청주에 살던 최참판의 부인은 오랫동안 아이가 없어 속상했어요. 어느 날 부인이 도와준 도사가 바위를 쪼아 여인의 모습을 만들면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고 알려주었어요. 부인은 99일 동안 매일 바위를 쪼았어요. 완성되던 날 밤, 부인은 서로 다른 말을 하는 두 도사의 꿈을 꾸었지만 처음 도사의 말을 믿고 끝까지 해냈어요. 얼마 뒤 부인은 정말로 아들을 낳았대요. 그 뒤로 사람들은 이 바위를 애기바위라 부르며, 아이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을 던지고 소원을 빌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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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 등처럼 떠오른 백사장, 신대
청주의 봉점나루에는 등이 굽어 거북을 닮은 노인이 살았어요. 사람들은 그를 구암도사라고 불렀지요. 어느 날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혔어요. 뱃사공은 사람들을 구했지만 구암도사만은 물 위로 올라오지 않았대요.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제사를 지내자, 신기하게도 강바닥에서 거북 등처럼 둥근 하얀 모래섬이 솟아올랐어요. 그 뒤 한 노인이 이곳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사람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새로운 터전이 생겼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신대라고 부르게 되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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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스님을 살린 쌀고을 인심
큰 가뭄이 들었던 어느 해, 먼 길을 걷던 스님이 청주의 한 마을 어귀에서 배고픔에 쓰러지고 말았어요. 마침 그 집에 살던 배씨 아저씨가 스님을 방으로 옮기고 며칠 동안 미음을 끓여 정성껏 보살펴 주었지요. 기운을 차린 스님은 이 가뭄에도 쌀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왜 그런지 물었어요. 배씨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사는 인심 덕분이라고 답했지요. 스님은 크게 감탄하며 이곳이야말로 진짜 쌀고을이라 말하고, 길을 떠나며 만난 굶주린 사람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전했대요. 그 뒤로 사람들은 이 마을을 쌀고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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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부리다 망한 부자, 천석골
고려 말, 참깨를 천 석이나 심을 만큼 넓은 땅을 가진 서씨 부자가 청주에 살았어요. 사람들은 그를 서천석이라 불렀지요. 부지런하던 서천석은 시간이 지나자 일하지 않고 편히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어느 날 찾아온 노승에게 그 방법을 묻자, 스님은 장정 서른 명을 모아 마을 뒷산의 산허리를 끊어 길을 내라고 했지요. 사실 그 산은 재물이 서천석의 집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소중한 산이었어요. 산허리가 끊기자 서천석의 집안은 삼 년 만에 크게 기울고 말았답니다. 이후 사람들은 천석꾼이 살던 곳이라 하여 이 마을을 천석골이라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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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알려준 샘물, 호무골
청주 용담동 깊은 산골에는 좋은 집터가 있었지만 물이 없어 아무도 자리를 잡지 못했어요. 이명도라는 사람이 이곳에 집터를 닦다가 역시 물을 찾지 못해 떠나려던 밤이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춤을 추듯 숲속에 머리를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는 것이었어요. 이명도는 밤새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지요. 날이 밝자 호랑이가 머리를 넣었던 숲을 살펴보니 그곳에서 맑고 시원한 샘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이명도는 그제야 집을 짓고 정착했고,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어 마을을 이루었지요. 호랑이가 춤추며 샘물을 알려준 곳이라 하여 이 마을을 호무골이라 불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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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모양 청주를 지켜 준 철 기둥
고려 시대, 청주 근처 절에서 잠을 자던 혜원 스님에게 신비한 일이 일어났어요.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더니 하늘에서 부처님 목소리가 들려왔대요. "용두사로 가서 돛대를 세워라." 혜원 스님은 산과 들로 둘러싸인 절에 왜 돛대가 필요한지 알 수 없어 한참을 고민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지나가던 아이가 "소금 배가 들어올 텐데 돛대가 없어 걱정이다"라고 혼잣말하는 것을 들었지요. 스님은 청주 땅이 마치 물 위에 뜬 배처럼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고, 용두사에 철로 만든 긴 기둥을 세웠어요. 그 뒤로 사람들은 이 기둥이 배 모양의 청주를 지켜 준다고 믿으며, 청주를 배 성이라는 뜻의 '주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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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처녀가 함께 넘은 슬픈 고개
옛날 청주에 살던 이 참판의 딸 운선은 집안의 하인이었던 상백을 몰래 좋아하게 되었어요. 신분이 달라 마음을 전하지 못한 운선은 병까지 얻었지요. 상백은 미안한 마음에 절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지만, 운선은 그를 찾아가 함께 멀리 떠나자고 부탁했어요. 두 사람은 밤에 몰래 절을 빠져나와 이정골고개를 넘다가, 앞날을 걱정하며 크게 슬퍼하다 고개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대요. 이 소식을 들은 주지 스님은 스님들이 다시는 그 고개로 다니지 못하게 했고, 옛 구(舊) 자를 써서 이 고개를 '구중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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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에게 자리를 빼앗긴 무사 이야기
먼 옛날, 북쪽에서 온 한 무사가 훌륭한 장수가 되고 싶어 남쪽으로 내려왔어요. 꿈속 도인이 알려준 신비한 동굴을 오랫동안 찾아 헤맨 끝에 청주 용박골에서 마침내 그 동굴을 발견했지요. 그런데 동굴 안에는 이미 용 한 마리가 하늘로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무사는 백 일 동안 동굴 밖에서 기다렸다가 용을 물리치려 했지만, 결국 용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대요. 실망한 무사는 바위를 발로 차며 아쉬워하다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해요. 그 뒤로 사람들은 용이 살던 바위를 '용바위'라 불렀고, 그 바위가 있는 마을을 '용바위골', 오늘날의 '용박골'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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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태실을 지킨 무인의 꿈
1919년 무렵, 명당자리를 찾아다니던 학도사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은은한 빛이 나는 자리를 발견하고 그곳에 아버지의 무덤을 썼어요. 그런데 그날 밤, 학도사의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 크게 혼이 나는 모습을 보여 주었지요. 다음 날 가보니 그 자리는 사실 왕의 태실이 묻힌 신성한 곳이었어요. 그날 밤 다시 꿈에 늠름한 무인이 나타나 "나는 태실을 지키는 안태사다"라며 크게 꾸짖었대요. 놀란 학도사가 아침에 무덤을 파 보니 아버지의 시신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고 해요. 마을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무인이 태실을 지켜 준다고 믿어, 마을 이름을 '무성리'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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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을 다치고 큰 부자가 되었다는 장자말
충청북도 청주 죽전리에는 옛날 부부가 운영하던 작은 주막이 있었어요. 어느 날 관상을 잘 보는 나그네가 하룻밤 묵으며 주인의 얼굴을 살펴보니 큰 복을 타고났는데도 계속 가난한 게 이상했어요. 알고 보니 주인이 왼쪽 발목을 자꾸 흔드는 버릇 때문에 복이 달아나고 있었대요. 나그네는 밤새 주인의 발목을 다치게 했고, 주인은 발을 절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살림이 쑥쑥 늘어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해요. 사람들은 부자를 뜻하는 '장자'라는 말을 따서 이 마을을 장자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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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가족이 살았다는 마을, 범말
충청북도 청주시 오송읍에는 범말이라는 마을이 있어요. 옛날 지리산에서 온 호랑이 부부가 이 골짜기 동굴이 마음에 들어 눌러앉았대요. 겨울이 되자 먹이가 부족해진 호랑이들은 마을로 내려와 가축을 잡아먹었고, 사람들은 덫을 놓아 새끼 호랑이를 잡고 말았어요. 화가 난 어미 호랑이가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하자 마을은 큰 어려움에 빠졌지요. 그때 노인으로 변한 흰 호랑이가 나타나 호랑이 가족을 크게 꾸짖고는 함께 데리고 떠났대요. 그 뒤로 마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사람들은 호랑이가 살던 마을이라 하여 이곳을 범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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